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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자주 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 것 (feat.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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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Love 연애

30대 중반이 되니, 이제 연애를 가리게 되었다. 
가린다?는 말이 좀 어색하긴한데,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필터링하겠나. 그게 아니라 단지 애초에 내가 힘들 것 같은 연애는 굳이 에너지를 다 소모해가며 뛰어들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내 삶과 내 일과 내 관계가 이미 어느 정도 틀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나의 길을 바꾸거나 다시 도전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느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두려운 감정인 것 같다.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마냥 자유롭게 연애만 한다는건 책임감이 없거나 너무 철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나보다.

20대의 나의 모습은 그냥 열정 그 자체였다. 열정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만들면 그게 나였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 내 온 몸을 던졌다. 무엇이든 겪어보고 느끼고 실행하고 넘어지고 또 일어났다. 무한 탐색 모드라고 할 수 있었다. 가리지 않고 모든 걸 다 받아들이고 흡수하고 배탈나고 씹어먹고 다시 토하고를 반복했다. 손해보더라도 경험했으니 괜찮았다. 다치더라도 느꼈으니 괜찮았다. 실패했더라도 그걸 통해 배웠다며 만족했다. 

그런데 10년 정도를 그렇게 굴러다니다보니, 이제는 새로운 무언가가 나에게 주는 특별한 자극보다는, 꾸준히 무언가를 했을 때 나에게 주어지는 성취감과 프로의식과 안정감이 나에게 더 큰 만족을 주게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철이든 것은 아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철이 안든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늘 유지하고 있다.  뭐랄까 그게 내 진짜 모습이랑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드나보다. 

몇 년 전 지금은 전 여자친구가 된 그 분과 가로등 아래에서 밤새도록 다투던 날이 기억난다. 
내가 원했던 내 모습은,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었고, 눈물도 닦아주고 모두 내 잘못이라며 사과하고, 무릎을 꿇든 어떻게든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왜이렇게 상대방이 미워보이는지.. 심지어 너는 백수니까 집에서 자면 되지만 난 1시간도 못자고 바로 출근해야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생기고, 자신의 잘못은 1도 없다며 억지 부리는 모습이 너무 역겁고, 하나하나 모든 게 불만이어서 징징대는 사람이랑 대화하는게 너무 피곤하고 짜증이나서 다 뒤엎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드는 내 모습에 소름끼치도록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인간이었구나. 나도 똑같은, 전혀 다를게 없는, 아니 더 한 인간이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 때 나는 그렇게 못났을까? 왜 나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자제력이 떨어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혜롭게 그것을 잘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도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내다가, 결국 조금씩 천천히 마음으로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많은 걸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능력이 이젠 없구나. 앞으로도 점점 없어지겠구나. 어쩔 수 없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야하고, 할 수 없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누군가를 만날 에너지가 없다면 만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1. 에너지를 잘 충전하고, 누군가를 만난다.
2. 에너지를 채워주는 사람을 만난다.


나는 연애 경험이 정말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도 나는 연인에게서 나에게 필요한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많이 없다. 남녀가 달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내가 유독 별난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제는 이게 불가능한건가.. 안되나보다. 어려운건가 보다. 어쩔 수 없는 영역인가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그 역할을 상대방에게 요구하지 않고, 내가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나 혼자 헤쳐나가길 원한다. 그리곤 단지 그런 내 모습을 상대방이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내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니 잠시 시간을 줄 수 있겠냐고 정중하게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 모습을 전체를 부정해버리거나 인격적으로 비난하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관계를 이미 마음으로 끊어 놓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한 번 끊어지면 절대 다시 연결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요청하지 않았는데 혹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영역을 침범하면 굉장히 불쾌하다.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은 겉으로는 항상 웃는 얼굴에, 유머러스하고, 젠틀하고 말도 잘들어주는 나이스한 사람인 것 같지만, 사실 내 속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나는 정말이지.. 정말 정말 뼛속까지 차갑고 이기적이다. 

나는 모든 것을 '나' 자신을 위해 말하고 행동한다. '나'를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나는 이렇게 변해있다.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걸 알아버린 어린 아이처럼, 나는 이미 현실을 너무 많이 깨달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낭만을 꿈꾼다. 허무맹랑한 이상형을 꿈꾸고 그런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나에게 더 잘맞는 사람이 있을거라고 믿고 있다. 20대 때는 소개팅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고 항상 자연스럽게 연애로 이어졌기 때문에, 수많은 소개팅 제의가 들어와도. 딱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왜냐면, 그 사람을 만나고 겪어보기 까지는 첫인상이나 짧은 만남으로는 서로가 잘 맞는지 알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아무리 처음 시작을 우리는 잘 맞아. 우린 천생연분이야. 우린 잘어울려 해도, 결국엔 상대방이 원하는 걸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걸 준다. 그리고 그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끝까지 그 원하지 않는 것을 기어코 해버린다. 

성숙한 연애를 꿈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틱했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욕심쟁이인 걸수도 있고, 불가능한 걸 바라는 몽상가일 수도 있겠다. 내 민낯을 이렇게 써내려가는게 참 부끄럽겠지만 뭐 내 부족한 부분도 결국 수많은 내 모습 중의 하나이니까. 난 내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해줄 것이다. 

예전에는 자주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 것.. 이제 더이상 나는 나를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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