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업을 듣는 학생이 나를 스토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정신이 나가고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하나하나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혹시 뭐 실수한 게 있나? 잘못한 게 있나?'
나는 30대 초반에 대학원생이다.
와.. 정말 등록금이 왜이렇게 비싼걸까 좌절하며,
매일 아르바이트를 할까 고민하고 포기하고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 어차피 일하는거 내 전공을 살려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감사하게도 한 예고에 시간 강사로 수업을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 수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어떻게 커리큘럼을 만들까 고민을 하다가,
첫 시간에는 내가 자기소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예고 학생들이고,
앞으로도 오디션을 계속 봐야하는 상황이다보니,
학생들이 심사위원이 되고,
내가 오디션장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컨셉으로
학생들이 질문으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게 수업의 목표였다.
첫 질문은 자원하는 학생이 시작하도록 하고,
세부적인 규칙으로는,
1. 내 답변이 끝나면 그동안 지목되지 않은 다음 사람을 지목한다
2.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지목한다
3. 더이상 지목할 사람이 없다면 질문타임 종료!
수업이라기 보다는 학생들과 수다 떠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학생들이 잘 참여해서 재미있게 진행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학생이 질문할 사람으로 나를 지목했다.
"선생님 제 남자친구 하실래요?"
순간 반 전체는 굉음을 내는 웃음소리로 난리가 났고,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에이 무슨 남자친구야 SNS친구나 해" 라고 말을 돌렸다.
그러다보니 칠판에 계정을 적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SNS 아이디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후로 한달이 지났을까?
피드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있는데,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이 올린 게시물이었다.
헐..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는데,
분명히 나를 찍은 사진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나를 찍은 사진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길을 찍은 사진이다.
이게 그냥 봐서는 전혀 나랑 연관이 없는 것처럼 알 수 없는데,
아무도 그게 나와 관련된 사진이라는 걸 모르는데,
나는 알 수 있다.
혹시나 해서 그 학생의 계정을 들어가봤더니,
내가 평소에 다니는 그 사진에 나오는 도로를,
매일매일 걷는 길을,
내가 보는 그 풍경이 그 사진에 나와있는 것이다.
사실 미리 속단하기는 이르다.
이 친구는 영상촬영 감독이 꿈이라고 했는데,
혹시 카메라 연습을 하고 있나?
아니면 그 학생이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거나,
남자친구가 이 동네에 살거나,
아니면 여기 주변에 자주 오는 헬스장이 있다거나,
무슨 뭔가가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내가 사는 집이 정확하게 찍힌 사진을 보고는 확신을 하게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집 창문 밖으로는 좁은 골목과 사람 키 만한 담장이 있어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기분인지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골목 안으로 힘들게 들어왔다는 이야기인데,
가끔 옆에 벽 타고 넘어오는 길고양이들 말고는 아무도 잘 모르는 곳인데,
뭐가 어떻게 된걸까? 누가 찍은걸까? 아니 왜 들어온걸까?
그러다가 밤에 창문을 보고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우리집 창문은 밖이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기 때문에,
그냥 투명 창문으로 되어있는데,
이게 밤이 되면 집 안 형광등에 창문이 반사되어,
거울 처럼 되기 때문에 안에서 밖이 잘 안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갑자기 불안해지면서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무슨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또 혹시라도 누가 보고 있다면..
내가 이상하게 당황하는 모습을 왠지 보이면 안될 것 같아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를 했다.
그러다가 아니 아무도 없는데 내가 왜 연기를해?
하면서도 왠지 너무 혼란스러워서,
혹시나 누가 있나 확인해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는 모르는 척 있다가 갑자기 재빨리 창문으로 가서 활짝 문을 열었다.
쌔앵.. 가느다란 바람소리만 들릴 뿐 아무도 없었다.
'아 역시, 아무도 없구나. 내가 너무 예민했나?' 하는 순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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